개발자라는 직업의 장점
요즘 개발자라는 직업이 꽤 인기가 있다. 경력자 연봉이 치솟고 있고, 채용공고가 넘쳐나서 어딜가야 할지 행복한 고민인 경력자들이 많을 것이다.
몇년전만 하더라도, IT 회사들의 위상이 전혀 지금같지 않았고, 대부분의 개발자들이 회사의 소모품처럼 여겨졌고, 낮은연봉에 심한 야근과 업무강도로 3D직종으로 여겨졌었다.
IT대기업들의 등장과 그들이 인력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고,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게 되는 상황으로 이어지면서, 3D환경에서 일하던 개발자들도 그 낙수효과를 누릴수 있게 된 것이다.
그와 맞물려 2,3년 사이 비전공자 학원출신들의 개발자들이 업계에 크게 늘어난것이 느껴진다.
나도 비전공자이긴 하지만, 내가 일을 시작한 7,8년전쯤에는 비전공자가 it업계에 들어오는게 쉽지 않았고, 사실 하고싶지 않기도 했던 시기였다. 나같은 경우엔 우연한 기회에 창업을 하게 되었고, 그때 쌓은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자로 진로를 변경할 수 있었다. 나의 첫 it직장은 SK였는데, 나와 입사동기였던 150명가량의 개발자 신입사원중에 이중전공조차 하지 않은 순수 문과 비전공자는 나한명 뿐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나는 개발자로 진로를 택하기 전에, 모 그룹의 전략기획부서로 취직을 했었다. 주로 그룹내 어려움을 겪는 자회사와 사업들에 인하우스 컨설팅을 해주는 조직이었다. 내가 주로 했던 일은 해당 사업의 산업분석을 먼저 하고, 앞서가는 경쟁사들의 현황과 전략을 분석을 하고, 자사의 비지니스가 처한 상황을 냉정히 분석한 뒤에 돌파구를 찾기 위한 전략을 짜내는 일들을 했었다. 사업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직관과 데이터들을 종합해 최선의 컨설팅안을 뽑아내는 일을 했었다.
그때 겪었던 직업적 스트레스는 내 직업인생을 통틀어 가장 컸던걸로 것으로 기억된다. 전략기획 뿐만 아니라, 인사/재무/마케팅과 같은 일반 사무 직무들의 공통적인 고통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그것은 업무에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최선의 전략안을 고민해도, 상사나 책임자가 다른 안이 맞다고 생각하면 그들의 생각에 맞게 전략을 바뀌어야만 했다. 왜냐하면 전략이라는게 어떻게 끼워맞추면 또 전부 맞춰지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 문제점은, 사내 인간관계도 여러모로 굉장히 중요해진다는 것이다. 타직무에 비해 이직의 가능성과 기회가 크지 않기에 대부분의 사람이 긴 근속을 가지고 있고, 해당 회사에 자신의 직업적 운명을 걸게된다. 그러므로, 옆에 있는 상사와의 관계가 사소하게나마 틀어진다는 것은 많은 어려움을 예상하게 한다. 전문성을 통해 직업적 독립성을 갖지 못하고, 회사와 사람에게 종속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요즘들어 개발자의 연봉이 크게 올라서 비전공자 개발자 준비하시는 분들은 그것이 이 직업의 최대 장점이라고들 생각하고 많이들 진입할 지 모르겠으나, 나는 이 직업의 최대 장점은 위의 단점 2가지(답이없는 업무와 인간관계)를 상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발자 일에는 정답이 있다. 어떻게든 기능이 돌아가면 그것은 답이다. 물론, 고려해야할 것들이 훨씬 많고 더 좋은 답이란게 있지만, 어쨌든 답이란게 존재한다.그래서 내가 답만 잘 찾아내면 누구도 크게 태클을 걸진 않는다.
더불어 굉장히 평등한 인간관계와 사람/회사에 종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개발자 문화속에서 일을 해 나갈 수가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누구도 지금의 회사가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는 개발자는 없다. 이곳이 싫으면 언제든 떠나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는 직업적 상황이 전제 되어 있기에, 갑질과 고압적인 인간관계는 성립하기가 어려운 개발자 문화가 자리잡았다. 물론 그러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것은 개인의 인격 문제이지, 전체적인 문화는 그렇지 않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즘 비전공자들의 진입의 최대 이유가 높은 연봉과 쉬운 취업인것 같은데, 사실 그것은 마치 주식 차트처럼 시장의 등락이 있는 것이다. 좋은시절이 있고, 좋지 않은 시절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보다 나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다른 시각에서 개발자라는 직업을 바라봤으면 좋겠다. 이 직업이 가진 직업적 자유도와 그것이 만들어내는 평등한 인간관계 문화 라는 부분 말이다.
위의 장점은 사실은 자기계발을 전제로 성립하는 것이기에 좋은 개발자가 되기 위해선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직업적 자유도를 누리고 싶으면, 나 자신이 실력을 갖추어야만 하고, 평등한 개발자 문화에 폐를 끼치지 않고 나도 일조하고 싶다면 실력을 갖추되 겸손함으로 동료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직업적 성숙이자, 인격의 성숙의 과정이기에 부단한 성찰이 필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최근에 본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결심"에서 박해일 의 대사가 상당히 흥미로웠다. 탕웨이가 "당신은 품위가 느껴지는 형사여서 좋았다."라고 말하자, "품위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자부심에서 나온다."라는 말을 하였다. 자신의 직업에 어떠한 철학적 가치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품위가 느껴진다. 내가 최선을 다하고 최고라는 자부심에서 품위있는 자신감이 나올것이고, 그리고 한편으론 한없이 부족하다는 겸손함 속에서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할줄 아는 품격이 나오는 것 같다.
사회초년생때 만났던 팀리더였던 분이 생각난다. 도메인지식이든 개발지식이든 해당업계에서 최고로 평가받던 실력있는 분이었는데, 그 분만큼 친절하고 따뜻했던 사람을 본적이 없다. 실력에서 나오는 여유와 자신감이 함께 했던 팀원들을 불안하지 않게 만들었고, 그 누구도 무시하거나 쉽게 대하지 않으셨고 언제나 존중해주고 배려하셨다. 나에게도 한번도 위축이 될 만한 말을 한다거나 깎아내리신 적이 없었다. 이런관점에서 좋은 개발자라는 것은 좋은 사람이지 않을까 싶고, 좋은사람은 좋은개발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